네이버 예약 홈페이지

아직 근시가 아닌 아이의 위험도 — ‘원시 여유도’라는 기준

핵심 요약 (Key Takeaway) 아직 근시가 아닌 아이들 사이에도 위험도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나이에 비해 남아 있는 원시 도수, 즉 원시 여유도가 얼마나 얇은지가 앞으로 근시가 시작될지를 가장 잘 예측합니다. CLEERE 연구는 만 6세에 +0.75디옵터보다 원시가 적으면 중학생 시기까지 근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으며, 이 기준은 조절마비제를 사용해 측정한 굴절값에서만 성립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데리고 오신 부모님께 “지금은 근시가 아닙니다”라고 말씀드리면 대개 안도하십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제가 “다만 6개월 뒤에 한 번 더 보겠습니다”라고 덧붙이면 표정이 다시 굳습니다. 근시가 아니라면서 왜 또 오라고 하느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아직 근시가 아니다’라는 상태가 모든 아이에게 같은 의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같은 1.0의 시력, 같은 정상 판정 안에서도 어떤 아이는 앞으로 몇 년간 근시가 되지 않을 눈이고, 어떤 아이는 이미 근시의 문턱에 서 있는 눈입니다. 그 차이를 읽어내는 지표가 원시 여유도(hyperopic reserve)입니다.


아이의 눈은 원시로 태어나 정시를 향해 자랍니다

갓 태어난 아기의 눈은 대부분 원시입니다. 안구의 앞뒤 길이가 짧아 초점이 망막보다 뒤쪽에 맺히기 때문입니다. 성장하면서 안구는 길어지고, 동시에 각막과 수정체의 굴절력은 줄어듭니다. 눈이 스스로 초점을 망막 위로 맞춰가는 이 과정을 정시화(emmetropization)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정시화가 정확히 정시에서 멈추어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안구가 계속 길어지면 초점은 망막을 지나쳐 앞쪽에 맺히고, 그 순간부터 근시입니다. 그래서 학령기 아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남은 원시 도수는 근시로 넘어가기 전까지 남은 완충 구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완충 구간이 원시 여유도입니다.

시력표는 이 여유도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0.75디옵터의 여유를 가진 아이도, 여유가 이미 0에 닿은 아이도 시력 검사에서는 나란히 1.0이 나옵니다. 학교 검진에서 정상이라는 결과지를 받아 온 아이가 반년 뒤 근시로 진단되는 일이 드물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원시 상태의 짧은 안구에서 안축장이 길어지며 초점이 망막 앞으로 이동하는 정시화 과정을 단계별로 비교한 단면 그림
정시화 과정 (안축장 신장에 따른 초점 이동)

나이별 경계선: CLEERE 연구가 제시한 숫자

원시 여유도를 임상에서 쓸 수 있는 숫자로 만든 것이 CLEERE 연구입니다. Zadnik 등이 2015년 JAMA Ophthalmology에 발표한 이 연구는 근시가 없는 학령기 아동 4,512명을 대상으로 매년 조절마비 자동굴절검사를 시행하며 만 13세까지 추적했습니다. 근시 발생은 구면대응치 -0.75디옵터 이상으로 정의했습니다.

연구가 제시한 나이별 경계선은 이렇습니다. 만 6세에 +0.75디옵터보다 원시가 적은 아이, 만 7~8세에 +0.50디옵터 이하인 아이, 만 9~10세에 +0.25디옵터 이하인 아이, 그리고 만 11세에 이미 정시이거나 그보다 근시 쪽인 아이는 중학생 시기까지 근시가 될 가능성이 높은 집단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이 기준의 판별 성능은 C 통계량 0.87에서 0.93으로, 예측 모델로서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 수치가 아니라 나이와의 조합입니다. 똑같은 +0.50디옵터라도 만 6세 아이에게는 경고 신호이고, 만 11세 아이에게는 오히려 여유가 남은 편입니다. 진료실에서 제가 도수만 보지 않고 반드시 생년월일을 함께 보는 이유입니다.


굴절값 하나가 여덟 가지 인자를 합친 것만큼 강력한 이유

CLEERE 연구는 13가지 후보 위험 인자를 함께 평가했습니다. 그중 10가지가 근시 발생과 통계적으로 연관되었고, 다변량 분석에서도 8가지가 남았습니다. 기저 구면대응 굴절값, 부모의 근시, 안축장, 각막 굴절력, 수정체 굴절력, 조절성 폭주비(AC/A), 수평수직 난시량, 시각 활동량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결론이 흥미롭습니다. 구면대응 굴절값 하나만 사용한 모델이 여덟 가지를 모두 넣은 모델과 사실상 같은 예측력을 보였습니다. 부모의 근시나 근거리 작업량 같은, 부모님들이 가장 궁금해하시는 항목들은 굴절값이 모델에 들어간 뒤에는 추가적인 예측력을 주지 못했습니다.

기전을 생각하면 납득이 됩니다. 안구 길이, 각막 곡률, 수정체의 굴절력은 각자 따로 노는 변수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하나의 굴절값으로 합산되는 요소들입니다. 굴절값은 그 눈의 광학적 결산서인 셈입니다. 그러니 검사 항목을 늘리는 것보다, 그 하나의 값을 정확하게 재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다만 안축장은 예측이 아니라 다른 역할로 여전히 필요합니다. 근시가 시작된 뒤 진행 속도를 판단하려면 시작 시점의 기준선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부 링크 추천: ‘소아 근시 관리에서 안축장 측정이 시력 검사보다 중요한 이유‘ 주제 칼럼]


조절마비 없이 잰 값에는 이 기준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전제가 있습니다. CLEERE 연구의 모든 숫자는 조절마비제를 점안한 뒤 측정한 값입니다.

아이의 조절력은 성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합니다. 자동굴절검사기 앞에 앉으면 아이의 눈은 기계 안의 목표물에 초점을 맞추려 하고, 이때 수정체가 두꺼워지면서 실제보다 근시 쪽으로 치우친 값이 나옵니다. 원시 여유도가 +0.75디옵터 남아 있는 아이가 0.00디옵터로 측정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이 값을 그대로 위 기준에 대입하면 멀쩡한 아이를 고위험군으로 오판하게 되고, 반대로 안경 도수를 과하게 처방하는 문제로도 이어집니다.

그래서 아이의 첫 굴절 평가와 여유도 판정에는 조절마비 굴절검사가 원칙입니다. 아이가 안약을 무서워하고 검사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협조가 어려운 아이일수록 끝까지 붙잡고 정확한 값을 얻어야 합니다. 학교 검진의 시력표 결과나 안경원의 간이 자동굴절검사 수치는 이 판단의 근거로 쓸 수 없습니다.

조절이 개입해 수정체가 두꺼워진 눈과 조절마비 상태의 눈에서 초점 위치가 달라지는 모습을 비교한 그림
조절 개입 vs 조절마비 상태의 굴절 차이

여유도가 얇을 때 진료실에서 하는 판단

여유도가 나이에 비해 얇다고 확인되면 저는 세 가지를 조정합니다.

첫째, 추적 간격을 짧게 잡습니다. 근시는 시작 직후 1~2년의 진행 속도가 가장 빠른 편이므로, 발생 시점을 몇 달 단위로 포착할 수 있어야 억제 치료를 제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미 근시가 상당히 진행된 뒤에 발견하는 것과는 결과가 다릅니다.

둘째, 야외 활동을 구체적인 시간으로 처방합니다. He 등이 2015년 JAMA에 발표한 광저우 지역의 무작위 대조 연구에서, 만 6세 아동에게 학교 일과에 하루 40분의 야외 활동을 추가했을 때 3년 누적 근시 발생률이 대조군 39.5%에서 30.4%로 낮아졌습니다. 다만 같은 연구에서 안축장 증가량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습니다. 즉 야외 활동은 근시의 발생을 늦추는 데 근거가 있는 방법이지 이미 시작된 진행을 되돌리는 치료는 아니라는 뜻이며, 바로 그래서 아직 근시가 아닌 지금이 야외 활동의 효용이 가장 큰 시기입니다.

셋째, 안축장 기준선을 미리 확보해 둡니다. 근시가 시작된 다음에 처음 재면 그 값이 빠르게 늘어난 결과인지 원래 그 정도였는지 구분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이가 근시가 되기 전의 이 구간은 겉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유도가 매년 조금씩 소진되고 있는 시기이며, 개입의 선택지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를 그냥 지나칠지, 숫자로 관리할지가 이후 아이의 근시 도수를 상당 부분 결정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아이가 시력 1.0인데도 조절마비 굴절검사가 필요한가요?

시력은 지금 얼마나 잘 보이는지를 알려줄 뿐 남은 원시 여유도를 알려주지 못하며, 여유도가 0에 가까운 아이도 근시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는 1.0이 나오기 때문에 굴절값을 따로 측정해야 합니다.

Q2. 조절마비제를 반복해서 쓰면 아이 눈에 해롭지 않나요?

조절마비 굴절검사에 쓰는 점안제는 수 시간에서 하루 정도 조절 마비와 눈부심을 일으킨 뒤 회복되며, 연 1~2회 수준의 검사 목적 사용이 안구에 누적 손상을 남긴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Q3. 부모가 둘 다 근시면 아이는 결국 근시가 되나요?

부모의 근시는 위험을 높이는 인자가 맞지만, CLEERE 연구에서는 아이 본인의 굴절값이 모델에 포함되면 부모 근시가 추가적인 예측력을 주지 못했으므로, 가족력보다 아이의 현재 원시 여유도가 더 직접적인 판단 근거입니다.


본 칼럼은 일반적인 눈 건강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개별 환자의 진단·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증상이 있으시면 안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글 · 안과 전문의 송동훈 (애프터눈안과)

안과전문의 송동훈
이 글을 쓴 사람
안과전문의 송동훈
부산 동래구 미남애프터눈안과의원 대표원장
망막·시신경 관련 SCI급 논문 3편 저자. 진료실에서 환자분들께 다 전해드리지 못한 의학 이야기를 칼럼으로 풀어가는 공간입니다.
송동훈 원장 자세히 보기 →

댓글 남기기